기다림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 결국 멈추어버린 광한루원.
은하수의 아름다움과 월궁의 신비함을 간직한 그곳에서 이상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눈물 나는 기다림의 추억을 떠올린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마음이 움직인다.
하늘의 낙원을 지상에 옮겨 놓았다는 풍경은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너 신비로운 그리움과 아련한 기다림의 마음을 전한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기다림을 지켜본 다리 위에서 반가움과 안타까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성장시킨 수많은 만남 중에 가장 소중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오늘도 광한루의 평범한 연인들은 그들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렇게 남긴 기록은 두 사람만의 역사가 되어 길고 긴 세월을 뛰어넘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될 것이다.
물을 향한 거북의 모양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지척에 물을 두고도 내려가지 못하는 석상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광한루에 올라 춘향의 시선을 느껴본다.
님을 처음 만난 곳이며, 언제 오실지 모르는 안타까운 시선을 던진 곳.
기약 없는 만남을 준비하는 것 만큼 힘든 것이 있을까.
편지를 썼다.
하지만 당장 누구에게 써야 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공간과 솟구치는 애틋함을 전하고 싶은데 그 사람의 이름은 손에서 써지지 않았다.
은하수를 나타낸 물과 지상의 낙원을 상징한다는 삼신산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하늘을 동경하여 낙원을 지상에 꾸미고자 했던 이들은 저 모습에 웃음 지었으리라.
오작교의 전설을 떠올릴 때면 일년에 단 한번 허락된 그들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누군가 에게는 잠시의 만남이 수많은 세월을 이겨내는 힘이 되어준다.
이별의 장소이자 만남의 장소인 은하수가 지상에 내려왔다.
예전부터 물은 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이며, 다른 이와의 경계가 되기도 하며, 현실과 환상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하늘아래 월궁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광한루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광한루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 자체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은하수를 건넌다는 견우의 상한사와 물속에 숨겨져 있는 직녀의 지기석을 보며 하늘연인의 눈물겨운 만남을 떠올린다.
은하수는 헤어짐이 아닌 눈물겨운 재회의 장소이다.
아름다운 공간에서는 신비한 사랑의 기적이라도 생기는 걸까.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넘어 광한루원의 또 다른 전설 ‘춘향전’을 떠올리며 월매집을 들어선다.
정화수 한 그릇에 손바닥이 닳도록 빌어대던 어머니의 마음이 세월이 흐른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도 걱정이 줄지 않는다던 어머니의 잔소리가 유난히 그립다.
내 기억 속 월매는 언제나 호들갑스러운 여인이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자식의 일 앞에서는 누구보다 크게 기뻐하고 크게 울부짖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소곳한 월매의 모습을 보면 생각한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흥겨운 노래라도 부르는 걸까? 수많은 고난과 인내와 신뢰를 거쳐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진실을 아직은 모르리라.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떠올렸기 때문.
만남에 대한 기대를 숨기고 그리움의 설렘만을 지속하길 원했던 내 자신을 발견한다.
물 속 광한루는 은하수의 월궁, 땅 위의 광한루는 춘향전의 기다림의 장소처럼 느껴진다.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룬 곳에서 아련했던 그리움을 기다림으로 바꾼다.
천지의 조화를 이루어 놓았다는 광한루의 처마는 고향을 그리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결처럼 걸었던 그 길의 끝에서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며 서있었다.